5번째 수능을 마치며(커리어)
여기에 글을 쓰면서 저의 과거 수능 시절을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눈물을 삼키고 이젠 자신을 좀 정리할까 합니다. 부정적인 글을 새해부터 초반에 썼었지만, 정서상 좋지 않아서 다 지웠고 대신 마음 속 깊은 울림을 이제는 쓰고 있습니다.더 이상 채원이한테 부끄럽지 않게, 24살이라는 나이에 걸맞게. 제 수능 커리어를 여기에 적어볼까 합니다.
무시마 내가 걸어온 커리어.
1. 처음 평가원(19 6평) 때입니다. 처음 본 평가원 시험은 천지개벽 그 자체였습니다. (국어 91, 수가 85, 영어 4.19%, 한국사 10%대 전후, 화1 42, 지1 41), 공부가 부족한 현역에게는 그야말로 난리 부르스입니다. 당시 우리 반도 그렇고, 저도 완전히 성적이 개판이었습니다. 점수는 잘 기억이 안 나는데 등급으로 54654였으니까요. 그런데 철이 없을 그땐 점수 하나로 모든 것이 끝나고, 무너지고, 힘들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정말 재밌는 것은 고작 수특+EBS로만 2~3등급은 물론이고 1등급도 뜰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을 가진 저였습니다. (쉽게 이야기하면, 지금 1달 분량 공부하고 성적 잘 나오길 바라는...)
2. 다음 평가원(19 9평) 때는 공부를 해야겠지 했지만 정신상태가 말이 아니어서 공부보다 심신 안정에 초점을 두고 여름을 후지부지 보냈고, 시험고 그냥저냥 봤습니다. 당시 등급은 24543, 국어 1컷이 높아서 고1~고3 때 시험 본 것 중 최초로 2가 떳습니다. 문제는 이 국어 때문에 또 수능 전까지 자만하고 있었다는 점이... 이때 사관 시험을 본다고 해놓고 접수 기간을 놓쳤고, 수시 접수도 까먹고 있었다가 3시간 전에 급히 집어 넣었던 어리숙한 현역이었습니다.
3. 첫 수능(19)을 맞이한 순간입니다. 모든 게 낮설고, 무지하게 긴장을 했었습니다. 홀수형, 자리, 마음가짐.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채로 수능을 봤고, 국어에서 막힘과 동시에 뒤에도 도미노처럼 무너지던 시간이었습니다. 밥도 먹히질 않습니다. 끝나고 어머니가 데리러 오기 전 산악 지역의 학교에서 노을을 보는데 그냥 주저앉아서 한 5분 울다가 안 운 척하고 나왔습니다. 등급은 43323, 예상보다 더 떨어질 줄 알았는데 간신히 최저를 맞추고 서울 모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4. 두 번째 수능(20)이었습니다. 19학번을 즐기느라 6, 9평도 안 보고(시험지조차 보지 않았습니다.), 공부량이 사실상 0에 가까웠지만 여유가 있는 시험이었습니다. 작년하고 다르게 문제는 어느 정도 풀리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등급은 33332로 작년보다도 성적이 잘 나왔고 수시 응시를 할 수 있었지만.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아니어가지고 딱히 대학을 옮겨야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5. 세 번째 수능(21)이었습니다. 일단 작년과 비슷하게 공부량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년 수능을 위해 준비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때는 집에서나마 6, 9평, 교사경 등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냥 주변 분위기 느긋히 관찰하면서 응시한 결과 등급은 22221, 큰 특이점은 없었지만 이 한 해만큼은 제가 수능 봤다는 것을 아무도, 가족도 모르고 있습니다. 마스크 쓰고 24석 시험을 보는 첫 해, 마스크 끼고 시험을 본 적이 없어서 그 점에서 애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이때 가능성을 느꼈습니다. 내년엔 메디컬 합격증을 받을 것이라고.
제일 높은 곳에 난 닿길 원해.
6. 네 번째 수능(22)이었습니다. 이때부터는 현역 시절과 같이 6, 9평도 응시하였습니다. 메디컬 열풍에 휩쓸려서 다시 이 판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이 시점에 바로 갔으면 좋았겠지만 이런저런 일이 있었던터라 공부를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9평 때 성적 때문에 심각하게 도취해 있었습니다. (11211) 그러나 수능은 그렇게 녹록치 않은 곳입니다. 제대로 털렸습니다. 등급은 32133, 수학 가형이 공통으로 변한 것을 감안하면 오히려 작년보다도 성적이 떨어졌습니다. 국어가 어려우면 뒤의 성적들까지 같이 나가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다만 이때는 방심했던 터라 이 점에 대해서는 크게 할 말이 없이 반성했습니다.
7. 다섯 번째 수능(23)입니다. 전년도에 떨어짐과 동시에 나이, 병역, 자금 문제 등으로 신경쓸 것이 더 늘어났고, 공부 시간 자체는 작년 대비 2~3배 늘었지만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어버렸습니다. 6, 9월까지 잘 버티다가 후반부에는 완전히 맛이 갔고, 그나마 공부량으로 버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수능장에 들어섭니다. 5번이나 들어오는 곳이지만 뒤에 놓인 현실로 인한 압박은 더 나를 누릅니다. 최선을 다해 응시, 가채점(기억상) 때는 전부 1이 떳고 드디어 이 판을 뜨는구나! 하는 감격에 제대로 자만해 있던 참이었습니다. 가채점을 제대로 하지 않은 대가는 참담했습니다. (평가원 확인) 이런저런 마킹 오류로 21213으로 주저 앉아 버렸습니다. (이 시험에서 5년 동안 처음으로 밀려쓰기, 맞게 풀고 다른 답 쓰기, 수학 13X 마킹 등 별의 별 실수를 다 했습니다.) 메디컬/서울대가 눈 앞에서 날아가는 순간이었습니다.
5번의 수능이 이렇게 끝났습니다. 끝일거라 생각했던 5번째 수능도 결국 6번째를 기다려야 하는 성적으로 남고 말았습니다.
5년 간 응시에 합격한 횟수는 단 한 번(아직 정시 결과가 나오지 않았지만,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것도 현역 수시 때라는 것을 보면서, 처음에는 난 왜 점수가 안 오르지라는 고민을 하였는데, 돌이켜보니 잘못된 생각이었습니다. 찍맞 아니었음 평균 4등급 수준이 실수 없었을 때 평균 1등급이 나오는 건 느리지만 분명히 성적이 오른 것입니다. 아무래도 제가 뭔가에 쫓기고 있다는 생각밖에는 들지가 않았습니다.
과거와 현재, 불과 4년 사이에 많은 것이 변했습니다. 2019년 대학교 처음 갔을 때의 그때 그 마음, 교수님과 친하던 그 시절이 사라지고 지금 저에게는 열등감, 후회, 비관밖에 남아있지 않다는 점을 발견했습니다. 동기들은 하나 둘 씩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듯 싶고, 선배들은 떠나고, 학교 선생님들도 하나둘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잠시 멈춤, 그리고 여러분들의 글들을 읽어보면서 깨달았습니다. 저는 현역 시절처럼 굉장히 오만해져 있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입학 시기에 그 여유로운 감정을 24살이나 되어서 찾으러 갑니다.
물론 학벌에 대한 열망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계속 이 점에 압박을 받으면 올해도 시간낭비하다 6번째 수능도 망할게 눈에 선했습니다. 당장 올해도 국어가 어려운 편이 아니었는데 개인적인 압박감이 작년 수능 국어보다 심했습니다. 5년 간 느끼는 점이지만 역시 '수미잡'은 정말 명단어가 확실합니다.
죽고 싶었습니다. 다 부숴버리고 싶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힘들었지만 결심했습니다. 일단 지원한 2곳에 모두 떨어지면 이를 시인한 후 2년간 휴학한 나의 첫 대학으로 돌아갈 계획입니다. 그리고 초심의 마음으로 전공을 들으면서 마음을 가라앉히고, 처음으로 돈도 벌어보면서 사회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이 풀릴때 쯤 다시 이 판으로 돌아올 계획입니다. 이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미련을 가지기엔 시간이 좀 흘렀습니다. 일단은 현실을 직시하고 백의종군한 후,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더 겸손해져서 24수능에 돌어올 겁니다.
I go to ride till i die die
19학번 새내기 때 소심한 저를 챙겨줬던 15학번 학생회장 형은 졸업했고, 올해 23학번이 들어오는 지금 제가 그 형의 입장이 되었습니다. 저는 짤의 빨간 글씨(정확히는 '반'을 끼워넣어야 맞습니다.) 처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이젠 불평하지 않으렵니다. 올해 다시 대학생활 재미있게 보내다 다른 곳으로 떠나렵니다. 좋은 일이 생길 수도 있겠죠.
이제 고등학교 입학하던 시절만큼 미래로 가버리면 30대가 됩니다. 언제까지 애처럼 살 수만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진정한 성인(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시기입니다.
누군가는 한 번에, 남들보다 빨리 입시에 성공하는 사람이 있고, 누군가는 몇 년을 해도 힘든 사람, 아예 볼 수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그래도 성적이 오르는 편이고, 대학도 있으며, 가능성이 있음에 감사하면서 올해 입시를 마무리 지을까합니다. 16~17시즌부터 같이 지내왔던 오르비... 정들었습니다. 같이 23수능 치르신 여러분들 그리고 올해 24수능 치르시는 여러분들, 응원합니다. 그리고 잊지 맙시다. 끝날 때까지는 절대 끝난 것이 아니라는 걸.
멋진 결말에 닿게, 불길 속에 다시 날아 Rising
감사합니다. 오르비 일원 여러분.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
-
온몸비틀기로 삼도극 풀는게 순수재미 GOAT임요 근데 수능땐 안나왔으면 좋겠음
-
가슴만 가리면 된다는게 핵심입니다.
-
어그로 ㅈㅅ 69모 다 3떴는데 2까지 올리려면 독서보다 문학 파는게 더 효율적인가요?
-
신기했다
-
근데 원래 자랑용으로 모고 점수 기록하는거 아니였늠? 4
나는자랑용이 맞음 입시 커뮤에서 똥글 싸는거보단 나은거같은데ㅋㅋ
-
점수가 70점대와 90점대 사이에서 엄청 파동을
-
목표는 안정 1입니다 현역인데, 여태까지 쭉 1이었다가 6모 83이 나옴..
-
[속보]교육부 “의대, 교육과정 단축 방안 검토 ‘6년→5년’” 8
교육부 “의대, 교육과정 단축 방안 검토 ‘6년→5년’”
-
공휴일낮시간때화장실에서가끔씩퍽퍽퍽퍽아아아앙소리들림양치하고있었는데기분좆같네진짜
-
[속보] 교육부, '내년 1학기 복귀' 조건부 휴학 승인 1
[데일리안 = 이정희 기자] 교육부, '내년 1학기 복귀' 조건부 휴학 승인
-
걍 개무섭다
-
페레이라 ㅈ된다 0
캬
-
나는 개인적으로 군대에 대한 반감이 심함. 일단 군대에 있는 장교랑 부사관들 다...
-
몸이 무기력하고 억지로 책을 펴도 눈에 들어오는 게 없는 날 그런 날 있잖아요 그때...
-
재수생인데 작년 지구 1 이었는데 물리 II로 갈아타고 싶은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물리 생명하다가 사탐런각 보고 있어서 일단 생명 -> 사문으로 갈았는데 물리를...
-
올해 목표 2
수능에서 센츄 뱃지 따기 흐흐
-
첨으로 실모 100점인줄 알고 싱글벙글 채점 했는데 어림도 없지 바로 96점
-
아직까지 ebs수특 수완 안 풀었는데요 지금이라도 ebs 사서 몰아쳐서 풀까요?...
-
국어 > [강대모의고사K 8회] 공통, 화작 > [수능특강 독서] 2부 인문예술 3...
-
십덕씩이라도 줬는데.. 이제는 옵붕이들 호락호락하지 않네
-
늦잠자서 닷지때림 10시간을넘게자네
-
흐
-
추천글이 거의 다 칼럼이네
-
에센셜 이니셜은 어떤포지션의 강좌인가요? 커리안내에도 안나와있던데 개념강좌인포인트나...
-
9모 37 4등급이었고 유자분 다음주 즈음이면 완강할 수 잏을 거 같아요...
-
지구 보정값조차 5면 걍 공부 안한 수준인데 어려웠으니까 멘탈 깨지지 말라는데 또 나만 어려웠네
-
문디컬 약대 5
여대 말고 되는데 있음?
-
법전원 교수님들 학부 강의 열린 거 들어보는 거 좋은 거 같음
-
화학이 재밌어졌다
-
오바인가요? 강의가 꽤 많던데
-
1번 문제 가 - 고전적 서양논리 vs 대안적 관점 고전적 서양논리는 범주 안...
-
파본검사 해야하는거 아닌가 싶었는데 쌤들도 별말없고 주위 애들도 안하길래 저도 그냥 넘어갔네요..
-
한국입시를 잘 몰라서... 명절때 친척 오빠가 와서 자기 서울대의대갔다고...
-
정법은 워낙 컨텐츠가 없는데 사문은 너무 많네요 풀어본것중에 너무 안쉽고 퀄리티 좋은얘들 추천좀요!
-
작년에 체대준비하느라 수학공부 안하고 제대로 준비하는건 올해가 처음인데 수능날...
-
4000부 판매돌파 지구과학 핵심모음자료를 소개합니다. (현재 오르비전자책 1위)...
-
ㅈㄱㄴ
-
무신사 너무 비싸
-
고1인데 시발점+쎈 회독만 해서 고2 모고는 낮2뜨는데 뉴분감들어가도 됨?
-
왜 네번째에 반지끼냐고 꼽먹음
-
뇌 탈출 2
푸슝~
-
네
-
국어 찍을때 0
시간이 모자라서 가나지문 눈알굴리면서 푸는데 만약에 수능때 절어서 한줄로 밀어야하는...
-
하니대갈끄니까~ 1
ㄹㅇ
-
디카프 배송 0
트레일러 1 2 시켰는데 트레일러 2만 옴;;; 원래 따로 오는거임?
-
10시간자도 졸리네 독재했으면 진작에 망했을듯 ㄹㅇㅋㅋ
-
ㅠㅠ 지역은 대구입니다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당
다 잘 될 겁니다
마음을 비우고 하시면 꼭 되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