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세요.
우리나라 공교육에 대한 비판을 할 때 가장 먼저 거론되는 것은 진로에 대한 구체적이고 심도 있는 고민, 생각을 할 시간적 여유를 학생들이 갖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이 점에 대해서는 깊이 공감합니다. 부모님과 주변에서는 대개 “그런 고민할 시간에 영어단어나 한 자 더 외워라.”고 하거나 “수능 치고 해도 늦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고3 수험생이 아니라면, 고1 이나 고2라면 자신의 진로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을 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진로에 대한 생각이란 단순히 어느 대학 무슨 학과를 갈 것인지가 아닙니다. 대학교는 하나의 과정입니다.
진정한 고민은 어느 대학을 갈 것인지가 아니라 앞으로 무엇을 할지입니다. 그런 면에서 요즘 청소년들이 과연 제대로 된 고민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내가 무엇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면, 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지 왜 그 직업이 하게 되었는지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게 순서입니다. 덮어두고 ‘난 그걸 할 거니까’라는 식의 맹목적인 생각은 바람직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좀 더 구체적으로 그 직업에 대해 알아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이 꿈꾸던 상상과 부합하는지, 자신이 그리던 이상이 현실과는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는지도 알아봐야 합니다.
제 경우를 들어보겠습니다.
전 고3 시절 불현듯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전 문과생이었고, 중학교 시절부터 쭉 6년 동안 외교관을 꿈꿔왔습니다. 부모님께서도 제가 서울대나 외국어대학교에 가서 외교관이 되리라는 것을 의심치 않으셨고요. 그런데 고3 4월 쯤 야간자율 학습 중간에 교정에 앉아 있는데 불현듯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정말 외교관이 되고 싶은 걸까?
돌이켜 생각해 보니 외교관은 제가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 부모님이 원하던 직업이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부터 아버지께서는 늘 저에게 외교관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 영어 공부의 중요성에 대해 역설하셨거든요.
그래서 무엇이 하고 싶은 걸까 생각했더니 답으로 나온 것이 의외로 ‘의사’였습니다.
그 이유 역시 조금 당황스러웠습니다. 제가 중학생 시절 생물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했는데, 칼을 들고 개구리의 배를 째고 장기를 들어내던 행위가 꽤나 재미있었던 기억이 났던 겁니다.
당시 친구들 모두 살아있는 개구리가 무서워 손으로 만지지도 못했는데 전 그게 재밌어서 혼자 8~9마리의 개구리를 잡아다 마취를 시키고 배를 갈랐더랬습니다. 그 기억이 떠오르면서 손에 칼을 들고 사람의 배를 가르는 행위가 해보고 싶었습니다. ^^;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참 황당하죠. 그런데 그 땐 단지 그 이유로 의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제가 의사라는 직업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단지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근무한다는 것 정도만 알았지만 그 밖의 지식은 깜깜했거든요. 그래서 그 길로 서점으로 갔습니다.
서점으로 가서 의사에 관한 책을 2~3권 봤습니다.
의사들이 쓴 의사에 관한 이야기, 의대생이 쓴 의대에 관한 이야기 등… 책을 보고 나니 어느 정도 의사가 대충 무엇을 하는 건지 감이 잡히더군요.
그 다음 집으로 가서 컴퓨터를 켜고 신문 기사를 검색했습니다. 검색어로 ‘의사’나 ‘병원’ 등을 치니 신문 기사만 셀 수도 없이 나오더군요. 날짜순으로 최근 2년 치는 봤습니다. 책과 신문기사를 보고 나니 머릿속으로 의사에 대한 실체가 반쯤은 잡혔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으로는 병원을 갔습니다. 서울대학교 병원엘 무작정 찾아갔습니다. 처음 가 본 서울대 병원은 무척이나 크더군요, 건물도 많고. 태어나서 흰 가운 입은 사람들을 그렇게 많이 본 적은 처음이었죠.
병원 한 구석에는 의대 건물이 있더군요. 그 곳에도 들어가서 의대생(?)들도 보았습니다. 하도 바쁘게들 돌아다녀서 말은 붙여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그런 다음 찾아간 곳은 동네 가정 의원이었습니다. 일부러 환자들이 별로 없는 오전 시간을 정해 찾아갔습니다. 이전에 감기로 몇 번 간 경험은 있었지만 사적으로 이야기는 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걸리지도 않은 감기기운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저, 선생님. 제가 현재 고3이고 의대를 가서 의사가 되고 싶은데, 혹시 괜찮으시면 저에게 시간 좀 내주실 수 있을까요?”
다행이 선생님께서 착하신 분이라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더니 이런 일로 찾아온 환자는 처음이라고 하시더군요. 서울대 의대를 나와 가정의학 전문의를 딴 그 선생님께 1시간 가까이 적잖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과거의 의사, 현재의 의사, 개원의의 사정, 현실. 앞으로의 전망 등등… 그러면서 앞으로 더 궁금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하시더군요.
지금 생각해도 참 감사하신 분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마지막으로 친구 형이 서울 소재 한 의대의 본과 학생이라길래 친구에게 밥을 사주며 형을 한 번 만나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본과 2학년이라는 친구 형을 어렵게 만나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렇게 근 한 달에 걸쳐 이것저것 알아보고 나서 한 달여를 더 고민하고 내린 최종적인 결론은, 의대를 가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의대가 저 자신이 가고 싶다고 해서 “어서오세요.”하고 대문 활짝 열고 반겨주는 그런 곳도 아니었지만, 제가 너무 의대를, 그리고 의사를 쉽게 보았다고 생각했습니다. 더불어 어느 정도 의사에 대해 가지고 있던 환상들도 한 꺼풀 벗겨졌고요.
제가 너무 유별나다고 생각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최소한 자신이 무엇인가 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그것에 대한 사전 정보는 알고 있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래야 더 정확히 자신의 꿈을, 이상을 되돌아볼 수 있고, 차후에 가서도 지나치게 큰 기대와 환상에 대해 더 큰 실망을 하게 되는 일을 안 만들지 않겠습니까?
고3이 무슨 오버냐, 하실 지도 모르겠습니다만, 그렇게 생각하진 않습니다. 저는 저런 행동을 주로 일요일에 했습니다. 고3 이라고 일주일 내내 공부만 할 순 없고, 그래서 저는 어차피 쉬는 것 의미 없이 보내지 말고 진로에 대한 탐구나 하자고 생각해서 일요일에 돌아다녔습니다.
세상에는 정보가 너무나 많습니다. 찬찬히 살펴보면 지금 당장 필요로 하는 것들을 생각보다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그 정보들을 무시하거나 알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면서 \"그런 것 내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잖아?\"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거기에 주위에서는 대학가면 다 알게 된다는 식으로 일단 대학부터 가고 생각하라고 종용합니다. 그러나 이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하고 싶은 일이 어떤 일인지에 대해서도 알아보세요.
그렇게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습니다.
0 XDK (+0)
유익한 글을 읽었다면 작성자에게 XDK를 선물하세요.
-
심찬우 선생님 생글생감 독서랑 문학 둘다 노베 가 들어도 되나요?? 문학은 개념어는...
-
스트레스 이빠이
-
나,다 군에 안정으로 쓰고 가군 지를건데 고대가 다 2-3칸이라 이거 하나보고...
-
언젠가 탈출해야지
-
과는 상관 없어요
-
"오, 낙지여. 내가 도대체 뭘 잘못한 거죠? 국어 94점, 수학 88점, 영어...
-
암만그래도 다군인데
-
님들은 영어 지문 읽을때 영어 그대로 받아들이시나요? 2
아님 한국어로 해석하고 나서 이해하나여? 뭐가 더 좋은 방법일런지요..
-
예전에는 금 모으기 운동 이런 게 극복에 도움이 됐다지만 요즘엔 누가 미쳤다고...
-
친구가 없음뇨 3
키 6cm랑 누가 친구 해주겠뇨..
-
닉변완. 8
-
실외 봄 짱세먼지 여름 더움, 비옴 가을 짱세먼지 겨울 추움 실내에서 러닝머신으로...
-
기분이 좀 묘하네
-
근데 님 취향은 제가 아니겠죠. 갑자기 우울해졌어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
이틀뒤면 7
믿고 있습니다 12월에 타워레코드 달려갈게요
-
수학 과외 방식 4
제가 학생이고 숙제로 기출 풀어오기 -> 이해 안가는것 질문 -> 풀이 해설 이렇게...
-
교수님이 내가 좋다뇨..
-
피오르 크럭스가 뭔 차이인지도 모르겠고 가격도 똑같고 다른 데보단 저 둘이 낫겠지만...
-
최고차항도 없이 단 두줄로 끝 ㅋㄱㅋㄱㄱㅋㄱㅋ
-
저거 모아서 메일로 보내드렸다는데 그냥 내가 보기 꼬우니 처벌할수있도록 당사자한테...
-
올해 수능 백분위 언매 99~100 확통 76 영어 3 생윤 95~96 사문 91...
-
이러다 미국도 망하면 어카냐
-
메가패스나 대성패스 환급 받기 전에 또 패스 구매하면 환급 못 받나요?
-
국어수학은 어려울 땨 잘보면 표점으로 이득주잖아요 탐구 어려울 때 잘보면 국어...
-
논술 납치질문 1
만약 대학A에 합격했는데 수능성적이 높아서 대학A 안갈려고 취소하면 취소가 되나요?
-
신한투자증권에서 증권사 각 직무를 잘 설명해놓은게 있어서 한번씩 보면 도움될듯?...
-
진학사에서 지금 연대물리가 3칸인데 기공은 4칸 나오는게 말이 되나요? 고속에서는...
-
건대 갈수있나요?
-
김종익쌤 벌써 26 개념 강의 올리심… 어떤 분이 더 좋을까요?
-
https://orbi.kr/00070137789 다들 잘 봤네요... 표본이...
-
질문바듬뇨 22
키 6cm 몸무게 2kg 공수공부하다가 현타옴 주식 초하수 질문바듬뇨
-
여러분들 학교에도 껄렁대는 사람들 꽤 있음?
-
건대 될까요? 2
국어국문으로 보고 있는데 국탐 반영비 높고 수학 낮은 대학이 어디있을까여...
-
엄마가 지난번에 본가 내려왔을때도 비트코인 사라고 말씀하시던데 그때 사놓기만 했어도...
-
논술 저만 어려웠음? 수학 개빡센거 같은데
-
레어닉 먹기 17
아무튼 나한텐 레어함
-
100000덕
-
재수 망하고 펑펑 울면서 수능치려고 군대 갔습니다. 848 군번 동기 잇었는데...
-
영어 수학을 너무 못봤음..
-
화작런 고민 3
평소 모고볼때는 언매 1~2틀 이었는데 수능날 갑자기 4틀 해서 언매 무서워졌는데...
-
이거였음
-
나는 희망을 먹고 살아가는데 그 희망을 앗아가면 나는 무엇으로 살아가야하는거지 나는...
-
공익보내줘 6
제발 내가 똥 순식간에 치워줄게...
-
성인된지 1년도 안됐는데
-
이거만큼 재밌는 과목이 어딨다고
-
두통 배탈 요통 치질까지 걍 내 인생이 개씹주작이었으면...
-
그냥 일반 패스 사면 안되나? 어차피 재종반 들어가면 교재비 많이 안들어갈거같은데
-
IMF에서 한국에 경고하는 뉴스 영상에 댓글보니까 돈 있는거 다 금이나 미국주식...
-
공부 엄청 시킨다는데 사실인가요? 진지합니다..
-
죄송합니다 7
사실 영어 기출 제대로 안 풀어봤습니다
제가 봐도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남에게 이끌려 가는 사람이 되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미래에는 모르겠지만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버시고 싶으면 9급 공무원이 되서(쉬운건 아니지만-_-) 의대본과생 공부하는 듯이 미친듯이 재테크와 주식에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것일겁니다.(물론 공부만 해서는 안되고 경험을 많이 쌓고 조언을 많이 얻어야겠죠.)
안정적으로 매달 돈이 나오니 실패해도 리스크가 적을것이고 도전해서 성공하면 큰 이익이 될 겁니다.
물론 이길 말고도 다른 길도 많겠죠^_^
맹목적으로,아무생각없이 \"의치한\"만 외치는 수험생들에게 개념글이 되기를 바래요...
오 좋은글 쓰셨네요. 근데 하고 싶은걸 찾는것도 참 어려운일이죠.
그 어려운것을 학교가 도와줘야 하는게 당연한 일일텐데..
결국 교육부가 문제..ㅠㅠ
전부터 동사서독님은 꽤 많은 경험을 해 보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고등학교때부터 시작하셨던거군요. :) 하핫. 뭔가 크게 되실 거 같은.
맹목적으로,아무생각없이 \"의치한\"만 외치는 수험생들에게 개념글이 되기를 바래요... 2
저랑 같은 진로탐색 과정을 거쳤네요^^
저도 세브란스 병원, 서울대 병원을 찾아가보기도, 의사들이 의대생들이 쓴 책도 읽어보고
신문기사, 의대생들이 써놓은 글, 의사들이 써놓은 글들을 많이 읽어보고
직접 의사분들과 대화를 해보고 싶었지만 소심한 나머지 ㅠ^^
개념없이 문이과를 왜 나눠놔서 난리야...
저는 적성,성적은 이과인데 하고싶은 직업은 문과라서 난감했었어요(지금은 문과)
문이과가 나뉘지 않았더라면 저에게 좀 더 맞는 공부를 효율적으로 할 수 있었겠죠...
존경합니다
맹목적으로,아무생각없이 \"의치한\"만 외치는 수험생들에게 개념글이 되기를 바래요... 3
정말 좋은 글인것 같네요.
고등학교 1,2학년에게 이런 것을 진지하게 제시하고 가르쳐주고... 그런 교육이 필요할텐데.
좋은 대학 좋은 과 ... 이런 것만 강조하는 획일적 교육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이렇게 보내는게 어쩌면 당연한거라고 봅니다. 뭐 이러지 않는 학생이 더 많은게 현실이지만요
저도 비슷한 라인을 걷고, 철학과 지망을 포기했었어요.
\'네가 한국에서 철학을 배운다면, 그 철학은 네가 생각하는 철학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듣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