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국어 독해력1(고1,2를 위해)
1. 개요
독해력 발달의 세 단계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자 합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
뇌로 하는 독해
정신으로 하는 독해
세 단계는 가장 하위 단계부터 발달하기 시작하고 하위 단계의 발달이 상위 단계의 발달에 영향을 미칩니다. 각 단계마다 발달하는 시기가 있어서 보통으로 중, 하위 단계의 발달이 청소년의 시기에 끝이 납니다. 사람에 따라 자신의 노력과 환경에 따라 각자 다른 단계에서 발전을 멈춥니다. 따라서 필요한 시기에 적절한 노력을 한다면 가장 높은 단계의 독해력을 가질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
눈으로 하는 독해란 독해의 첫 단계입니다. 독해의 기본(기본적인 독해, Basic Literacy)은 글자를 소리로 바꾸는 능력, 자주 만나는 단어(고빈도 단어)에 관한 지식 등 모든 독해에 필요한 기본 능력을 익히는 것입니다. 대부분 취학 전까지 이런 ‘읽기’ 능력을 갖춘 다음 지속적으로 능숙해집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통상적으로 사용하는 단어의 의미나 일반적인 이해 전략을 익힙니다. 이 단계에서는 글 읽기에 능숙해져서 여러 음절의 단어의 음가(音價)를 쉽고 빠르게 연상할 수 있게 되고, 자주 등장하지 않는 단어의 음가 역시 자동적(반사적)으로 떠올릴 수 있게 됩니다. 구어(口語, oral language)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는 단어를 포함하여 세분화된 영역의 다양한 단어를 배웁니다.
중학교를 마칠 무렵에 이정도 수준의 독해 능력을 완성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간혹 고등학교에 진학한 학생에게서도 부진한 상태를 발견하기도 합니다. 이런 학생들은 글을 읽지 못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학생들과 비교했을 때 글을 읽는 속도와 정확성이 아주 미세하게 부족합니다. 비록 미세한 차이에 불과한 것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완전히 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복잡한 과정들이 원활히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에 이해가 부족함을 야기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읽기’는 충분히 익혔지만 눈으로 ‘읽기’가 독해의 최종 단계인 듯 생각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습니다. 이것은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읽는 것의 기초는 글자를 알고 글자에 맞게 소리내어 읽을 수 있는 것이므로 <눈으로 하는 독해>는 모든 독해의 기본입니다. 하지만 ‘읽고’(독讀) 난 다음 ‘이해’해야 독해인데 그저 읽기만 하고 읽은 것을 되풀이해서 말하는 것(기억하기만 하는 것)만을 독해라 할 수 없습니다. 글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는 것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읽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는 독해 능력을 축적하는 첫 단계이자 독해 능력의 기초입니다. 따라서 어린 시절부터 능숙하게 읽음으로써 더 자라서 높은 수준의 글을 능숙하게 읽고 이해하는 상위 단계의 독해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그것에 대한 아무런 생각(해석)을 하지 않는다면 어린아이와 같이 눈으로만 하는 독해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 있게 됩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는 독해의 첫 단계이지, 결코 독해의 마지막 단계가 아닌 것을 주지해야 하겠습니다.
뇌로 하는 독해
살짝 어려운 이야기를 비유적으로 하겠습니다. 우리 뇌에는 가상의 공간이 있어서 외부로부터 정보를 들여와 작업을 하는 작업장과 지식을 장기적으로 보관하는 창고가 있습니다. 작업장에는 새롭게 마음속에 들어온 정보와 작업을 위해 창고에서 꺼낸 지식이 만납니다. 마치 자동차 정비소에 차가 들어오는 것과 같습니다. 온갖 부품과 장치들로 구성된 자동차가 정비소에 들어와서 부품 교체나 오일 교환을 합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는 독자가 글에 담긴 정보를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뇌로 하는 독해란 글 곧 정비할 자동차에 필요한 부품을 창고로부터 꺼내오는 것, 곧 지식의 창고로부터 글과 연관된 지식을 연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작업장에서 글과 지식을 만나게 하는 것입니다. 작업장은 무한정 큰 공간이 아니라서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전에 하던 작업, 주변에서 하던 작업이 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바람에 혼동을 일으키거나 한꺼번에 여러 작업을 하기 힘들어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을 읽으며 관련 지식을 연상하고 정보와 정보를 통합하는 작업이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특정 방식으로만 통합 작용을 하듯 통합 작용의 능숙도와 다양성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지식 창고로부터 정보를 연상하고 글과 결합하는 것이 바로 추론입니다. 추론은 의도적으로 노력해서 할 수 있기도 하고 잘하기 위해 의지를 갖고 꾸준히 연습한 결과로 필요한 상황에 자동적으로 발생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이든 눈으로 하는 독해에서 얻은 정보에 뇌가 반응해서 추론을 하므로 뇌로 하는 독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물건을 집어던지면 깨질 것이라고 예상하는 단순한 추론에서부터 논리적, 종합적 추론과 창의적, 비판적 사고 등이 포함됩니다.
뇌로 하는 독해는 지식을 활용하는 것이므로 우선 지식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뇌로 독해를 하면 지식을 축적하는 능력도 발전합니다. 여러 글 읽기 상황에서 지식을 연관시키고 활용하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뇌로 하는 독해 역시 학습과 훈련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눈으로 하는 독해와는 조금 다릅니다. 눈으로 하는 독해를 위해 읽기 훈련이 필요하다면 뇌로 하는 독해는 추론 훈련이 필요합니다.
정신으로 하는 독해
이번 장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 바로 이 독해입니다. 눈으로, 뇌로 독해를 할 수 있는 독자가 보다 상위의 전략을 실행함으로써 도달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독해를 실행하는 주체를 뇌에서 정신으로 옮기면 보다 상위 수준의 독해를 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최고 수준의 독해력은 사고력(언어-인지능력), 정서, 태도가 완벽히 결합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학습 동기와 의지를 제공해 주는 자아존중감, 지식에 대한 열정이 있어야만 높은 수준의 문해력에 도달할 수 있고, 학습 성과로 인해 문해력이 자아존중감과 지식에 대한 열정을 높여주는 선순환을 이루게 됩니다.
미국의 연구자들은 고등학생 대부분이 기본, 중간 독해 기술(눈, 뇌로 하는 독해)을 마스터하여 이야기 글(narrative story) 읽기는 잘 할 수 있을지는 모르나, 그들 중 많은 학생은 과학, 역사, 문학, 수학, 기술 방면의 어려운 글을 이해하게 해줄 단계에는 전혀 도달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피라미드와 같은 구조를 하고 있는 독해 능력은 하위 단계(눈으로 하는 독해)부터 점차적으로 상위 단계를 익히는 것인데 교육에 대한 관심이 하위 단계에만 편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여서 상위 독해력이나 청소년기의 독해력 교육을 위한 사회적 인식과 교육 환경이 마련되어있지 않아 청소년 대부분이 높은 수준으로 독해력을 향상시킬 기회조차 갖지 못한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여러 방면에서 개인의 독해력 발달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이 형성됩니다. 하지만 독서 이외에는 독해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딱히 아는 것이 없습니다. 그나마 어린 시절에는 독해 능력을 완벽히 갖추어야 한다는 의식이 있기 때문에 그에 상응하는 지도가 풍부합니다. 시중에 독서 지도에 관한 많은 책이 있고, 어릴적 독서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은 누구나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독해력 향상을 위한 교육이 평생 교육으로서 지속적인 학습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이 있다면 발전할 수 있을 학생들을 방치한 채 소수의 학생들만이 상위의 독해 수준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앞으로 우리 청소년들이 가장 높은 수준의 독해에 도달하여 학문적, 직업적으로 성공하고 삶의 즐거움을 풍성하게 누릴 수 있도록 정신으로 하는 독해, 학문적 독해가 어떤 것인지는 이후에 구체적으로 자세히 설명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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