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랏멍뭉이 [503209] · MS 2014 · 쪽지

2020-11-10 19:31:04
조회수 8,806

문->이 전과 후 서울대 합격 수기 2-1. 커리큘럼 : 거시적인 관점 - 어떤 공부를 어떤 시기에 했나, 어떤 굵직한 사건들이 있었나(-2016.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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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간신히 데드라인을 지켰네요.
사실 애매하긴 한 게, 2번 파트 커리큘럼으로 묶은 부분이 너무 길게 서술되어 2016년 2월을 기점으로 시기를 나눠 서술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이번 파트는 2016년 2월 삼수를 결심하게 되기까지의 부분입니다. 

개인적인 아픔도 여과없이 서술한 만큼 조금 진지하게 읽어주신다면 좋겠습니다. 


궁금한 게 있으시다면 편하게 덧글로 달아주세요! 항상 감사합니다 :)





1. 2015년 5월부터 9월 모의고사 전까지


제가 앞선 수기에서 1년 반의 수능 공부라고 말했지만, 사실 처음부터 두 번의 수능을 염두에 두고 수험생활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지방 수의대는 정시에서 서성한 공대 정도와 겹치는 입결을 보여주고 있었고, 국어와 영어의 경우어느 정도 베이스가 있었던 만큼 수학과 과학탐구(생1/화1) 두 과목을 모두 2등급 권 성적대로 끌어올린다면 승산이 있을거라 생각했었습니다.


총 6개월의 짧은 수험 기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만큼, 개념을 다지는 기간을 길게 잡아야 할 것이라 생각하고 9월 모의고사 전까지 완성하는 것을 목표로 잡았습니다. 먼저 수학의 경우, 당시 수학이 현재 교육과정을 기준으로 미적분, 기하, 그리고 현재는 기하 과목에서 제외된 공간도형/벡터를 포함했기 때문에 개념을 다지는 것만으로 매우 벅찼습니다. 한석원 선생님의 커리큘럼을 따라갔는데, 생각의 질서를 듣고 알파테크닉을 끝내는 것을 목표로 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계획이었습니다. 생각의 질서의 경우 모의고사 기준 2/3점 문제에서 다루는 개념을 포괄하며, 굉장히 얇은책이어서 금방 끝낼 수 있었고 알파테크닉의 경우는 4점 문제 전반의 80% 이상을 다루는 방법이 소개되어있어 이 두 과정만 제대로 수행하더라도 목적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지요.

이 과정의 맹점이 있다면 정신적인 고통이 상당하다는 점이 될 것 같습니다. 생각의 질서와 알파테크닉은 난이도에 있어서 굉장히 간극이 큽니다. 실제로 처음 알텍 연습문제를 접했을 때 자신있게 풀 수 있는 문제가 단 하나도 되지 않아, 머리를 쥐어뜯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때 제 수험생활의 수학 기본기가 완성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크게 두 가지 원칙을 지켰습니다. 첫 번째로, 모든 연습문제를 다 접근(적어도 15분 정도를 고민)해 본 다음 수업을 듣는다. (나름대로의 풀이나 접근 방법을 정리한 후 수업을 듣는다는 뜻입니다. ) 두 번째로, 막힌 문제의 해설 강의를 한 번에다 듣지 않고, 막힌 곳에 대한 실마리만 얻은 후 다시 푼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 당시 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던 저희 친 누나와 함께 공부를 했는데, 누나는 제얼굴 톤이 황정민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얘 이러다가 뛰어내리는 거 아닌가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스타벅스 2층에서 자주공부를 했었는데, 그 스타벅스에는 활짝 열린 발코니가 있었거든요. 제가 문제가 안 풀릴때 발코니에 자주 나가 바람을 쐬기도 했고요). 그렇지만 이 방법은 정말 효과적이었습니다. 문제에 대해 고민하는 15-30분의 시간 동안 무엇이 부족한지정확하게 인지할 수 있었고, 따라서 선생님의 해설강의가 말라가는 식물에 물을 주는 것처럼 달게 느껴지게 되었습니다. 짧은 시간동안 필요한 지식을 확실하게 붙들게 된 것이지요.


과탐 두 과목 중 먼저 생명과학 1에 대해 이야기 하겠습니다. 생1의 경우에는 백호t의 커리큘럼을 들었고 수능 날까지 쭉따라갔었습니다. 개념 자체가 방대하고, 킬러 문제가 중심적으로 출제되는 단원(유전, 요즘 같은 경우는 신경계와 근수축도 포함하지요)이 존재하는 만큼 개념의 뼈대를 정리해 킬러에 접근할 시간을 벌자고 생각했었습니다. 화1의 경우에는 고석용 선생님을 들었는데, 개념 전반이 수리 추론을 필수적으로 요하는 과목인 만큼 연습문제를 체화하는 것이 중요할 것이라 여기고, 같은 문제를 여러 번 회독하는 데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관심만,,). 





2. 9월 모의고사 그리고 수능

 

그리고 9월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중 나이가 좀 있는 몇몇은 아시겠지만, 2016학년도 9월 모의고사의 국/영/수 1컷은 모두 100이었습니다. 실질적인 변별력이 없었지요. 그리고 하필 저는 이때 100, 96, 100을 맞게 됩니다. 수학의 경우는 연습문제를 푸는 게 위력을 발휘했었고, 국어와 영어의 경우에는 아직 죽지 않은 감으로 때려맞춘 문제가 다 맞은 것이지요. 탐구 두 과목의 경우에도 각각 2등급을 받아서, 저는 ‘아 이제 킬러 문제에 접근할 준비가 되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무려양치기로 수학/과탐 1등급에 다가서겠다는 주제넘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상식적으로 2개월 안에 ‘양치기’라는 방식이 위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뜨거운 아이스아메리카노같은 것이겠지요. 킬러 문제를 풀기 위해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접근했는지를 의식적으로정리해놓았다면 좀 달랐겠지만, 저는 정말 어려운 문제만 주구장창 풀었습니다. 고석용 선생님의 킬러 특강을 들으면서, 어렴풋이 내가 이 문제를 푸는 방법을 정말 알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 생각에 그 이상의 관심을 기울이진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잡아놓은 개념을 복습하지도 않았고, 지엽적인 부분이라고 생각했던 생1의 개념들은 대충만 훑어보고 수특/수완은 정리하지도 않았습니다. 과목별 밸런스? 국어 영어 100점인데 굳이?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불행 중 다행이라면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하고(그때 영어는 상대평가여서 1등급과 100점이 분명히 다른 의미였거든요) 고정재 선생님의빈칸 추론 강의를 잠깐 들은 것? 정도. 그 마저도 문풀과 강의 듣는 것을 합쳐 하루 1시간 반 정도였지만..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과거의 저를 존나 패고 싶네요.


수능날이 되었습니다.


국어의 경우 다 맞을 것이라고 자신하고 집에 와서 채점해보니 93점. 다시 푸니깐 다 풀리는 문제들이었습니다. 수학 92점. 운이 좋게도 킬러만 틀렸고(크리티컬 포인트를 풀었었는데, 그냥 풀기만 했습니다. 결국 현장에서 킬러 문제를 보는데다시 생각해보니 9월과 수능 때의 킬러 접근 방식에 차이가 없더군요. 헛 공부 한 셈이죠.) 영어 100점(영어의 경우 그렇게 한 공부가 감 유지에 큰 도움이 되었다는 걸 시험을 치며 체감했습니다. 과목별 밸런스의 힘,,). 


그리고 생명과학 1. 역대급으로 어려웠던 시험. 1등급 컷이 42였고, 하나를 틀려도 백분위가 100이었던 시험. 지엽은 지엽대로, 킬러는 킬러대로 다 틀리고 33점을 받았습니다. 화학의 경우는 3점 3개가 나가서 41점. 사실 이것도 과분한 점수였던 게 문제를 풀면서 확실히 답이라고 말할 수 없던 문제가 2개가 넘었거든요. 킬러는 당연히 손대지도 못했고요.





3. 정시 추가합격 발표가 끝나고, 유독 추웠던 2월

결과적으로 가채점을 해보니 그래도 수의대에 갈 수 있는 점수라고 생각될 만큼의 배치였습니다. 문제는 2016년의 경우가채점과 실채점 과탐 백분위가 역대급으로 달랐다는 점이죠. 가채점 상으로는 생1 3등급 중반, 화1 2등급 바로 밑이었는데(평균 백분위가 85 정도 나왔습니다) 채점해보니 둘 다 3등급 컷. 백분위 78, 80 - 평균 79. 충북, 전북, 제주 수의대를썼는데 모두 예비를 받았고(탐구 변환표준점수를 거의 털리다시피 해서 당시 기준으로는 나쁘지 않았던 국/영/수 베이스를 탐구가 멱살잡고 끌어내렸습니다. 국영수 누백이 1.xx%였는데, 과탐을 포함하니 6%대가 되었던 게 기억이 나네요) 그래도 10-20번대였으므로 혹시 몰라, 하는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직도 기억나는 게 전북대예요. 예비 13번을 받았었던 것 같습니다. 34명인가 뽑았었던 거 같은데 13번이면 돌 수도 있어, 희망을 놓지 말자 생각했었습니다. 예비 1차에 세 명이 빠졌었나? 제 생일이 2월 14일이었고, 그때가 거의 추가합격 막타 후보들이 전화를 목 빠지게 기다릴 때였는데, 마지막으로 입학처에서 제가 확인한 번호는 7번이었습니다. 가혹한 생일이었네요. 친구들이랑 가평을 갔는데 마지막에는 모두가 제 눈치를 보고 저는 열심히 괜찮다고 말하지만 아무도마음 편한 사람 없는 그런 결말을 맞이했던 것 같습니다.


참 추운 생일이었습니다. 나중에 합격자 컷을 보고 제가 탐구에서 1점만 더 맞았다면, 3점짜리 말고 2점짜리를 틀렸다면합격할 수 있는 상황이었음을 알았습니다. 저에게 너무 화가 났고, 절망감이 들었었고, 안주했던 나날들의 알량함을 자조했습니다. 학교를 자퇴했으니 돌아갈 데도 없는데 이제는 어떻게 하지? 도피성으로 보석 세공과 기술 직종에 대해 알아봤으나 애초에 1형 당뇨로 인해 이 길로 왔음을 다른 누구도 아닌 제가 이미 너무 잘 알고 있었죠. 


울고 싶은 마음으로 한 번 더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그렇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집 근처의 강을 맨날 걸었습니다. 그 날도 새벽 2시 정도에 집에 들어왔던 것 같습니다. 집에 밥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밥이 따끈했습니다. 두 시인데. 밥 잘먹고 다녀야 한다고 쓰여있는 포스트잇이 붙어있었습니다. 막막한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 잘 몰라도 어떻게든 해주고싶은 마음. 보는 것 만으로 허물어져버리고 싶은 너무 크고 아득한 마음들. 방에 들어가 쓰러질만큼 울었습니다. 나는 결국 도망칠 곳이 없다는 게 무섭고, 엄마와 아빠의 마음이 너무 와닿고, 그럼에도 너무 고통스러워서 나를 놔주지 않는 끈질긴 부모님의 마음이 원망스럽고.


다 울고 나서 제대로 한 번 더 해보자 생각했습니다. 도망칠 곳이 없다고, 어차피 몸 병신인 거 다른 할 수 있는 일도 없는 거, 하다 그냥 죽어버리자고 일부러 독해져서 스스로 생채기를 내는 서슬 퍼런 사람이 되자고. 그렇게 삼수를 결심했습니다.




오늘 글은 여기까지입니다!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다들 좋은 하루 되시고, 수험생 분들은 조금만 더 힘을 냅시다. 숨지 말고 끝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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