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실로 믿는 것에 대하여 - 거북선은 과연 철갑선이었을까.
이 글도 원래 군대에서 썼던 겁니다...; 이건 아마 상꺾때쯤 쓴거 같네요. 노템전이라 허우적댔는데, 나와서 보니 아템전을 하려고 해도 별 차이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조금만 보강해서 올립니다.(노템전이란 찾아볼 사서와 미디어가 없는 상태, 아템전이란 이것저것 사료 다 뒤져보고 쓰는 것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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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이 16세기말의 난투는 왕이 도망가고, 수많은 장수들이 죽어 나가는 조선 중기의 비참한 드라마를 연출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죽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고, 온 국가가 사실상 초토화된 역사상 최악의 전쟁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잔혹한 역사의 틈바구니에서 민족의 영웅이라 불리는 '이순신 장군'을 얻어냈다. 23전 23승 무패의 신화. 자신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일본군을 격파하고, 종국에는 그 목숨을 전장에 바침으로써 그 찬란하고도 드라마틱했던 영웅의 모습.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이름 뒤에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두 가지의 이미지인 거북선과 한산도대첩은 그 이름만으로도 그를 위대해 보이도록 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나는, 이 글에서 이순신이라는 인물의 위대함을 깎을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다. 누가 뭐라고 해도 이순신은 대한민국 역사상 최고의 장수이며, 세계 최고의 제독이기에.
그리고, 이순신이라는 이름에 잘못 덧씌워진 하나의 어색한 껍질을 벗겨, 그의 위대함을 한층 더 높여보려고 한다. 이 내용이 약간은 충격적일 수도 있고, 무척이나 도발적일 수도 있지만, 그럼 들어가 보도록 하자.
우선 처음으로 말해야 할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에 대한 아주 단순한 오해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거북선이 이순신 선단(船團)의 주력함선이었다는 오해를 갖고 있다. 하지만 조선 역사에서 조선 해군의 주력 선박이라고 말할 수 있는 배는 항상 판옥선이었으며, 이는 이순신의 선단에서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참고로, 이순신의 최대 해전이자 마지막 해전이었던 명량해전에서 이순신의 배는 12척이었는데, 이는 모두가 판옥선이었다. 그리고 거북선의 경우는, 새로운 배를 건조한 것이라기 보다는 판옥선의 하나의 변형된 형태였다고 보는 것이 옳다.
그렇다면, 본론으로 넘어가 보자.
철갑선(鐵甲船) [명사] 쇠로 거죽을 싼 병선. - 한컴사전
철갑선은 위에 설명한 것 그대로, 쇠로 거죽을 싼 병선이다. 좀 더 쉽게 풀이하면, 몸체가 철로 구성되거나 철로 덮여서 선체의 방호력을 크게 증강시킨 병선을 뜻한다. 그리고 우리는, 거북선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라고 배워 왔고 그 것을 기정사실로 인식하고 있다. 물론, 조금 더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거북선(귀선)이라는 것이 이순신의 발명품이라기보다는 조선 초기부터 있어 왔던 특정한 배의 양식이라는 것 정도까지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결국, 거북선의 선체는 아직까지 발견된 적이 없고, 그렇기에 거북선이 실제 어떠한 형태를 갖추고 있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베일에 쌓여 있다. 다만 중요한 사실은, 거북선이 철갑선이라는 사실에 있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의심을 품어 본 일이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과연 그에 대한 역사적인 근거는 있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 것이 사서에 역사적 기록으로 당당하게 남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과연 그럴까?
신이 일찍이 섬 오랑캐가 침입할 것을 염려하여 특별히 귀선을 만들었사옵니다. 앞에는 용머리를 두어 입으로 대포를 쏘게 하고, 등에는 쇠송곳을 심었으며, 안에서는 밖을 내다볼 수 있으나 밖에서는 안을 들여다볼 수 없게 하였으니, 비록 적선 수백 척이 있다 하더라도 그 속으로 돌입하여 대포를 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싸움에 돌격장으로 하여금 이 귀선으로 먼저 달려들게 하여..(후략) - 당포파왜병장(唐浦破倭兵將)
위 사료는 이순신이 임진왜란 때 임금에게 올린 것으로, 현존하는 사료 중에 거북선의 형태나 모양에 대해 가장 근접해서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이다. 이 문헌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등에 쇠송곳을 심었다' 라는 것이다.
사실, 우리 측 문헌이 아닌 일본측 문헌에는 거북선이 철갑선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일본군의 문헌을 100% 신뢰할 수는 없는 것이, 그들이 거북선을 탈취해서 그 구조를 뜯어보고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거북선의 방호력을 과장해서 그렇게 이야기했을 가능성을 우리는 충분히 고려해야만 한다.
그렇다면, 일단 일본측 문헌을 배제하고 이야기를 해보자. 쇠로 된 송곳을 꽂을 것을 철갑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불멸의 이순신'을 한번 떠올려보자. 배의 등판을 통째로 쇠로 덮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그러다가 배가 가라앉기도 했다. 물론, 측면이 아닌 등판만을 쇠로 덮은 것을 철갑선이라고 부를수 있는가라는 의문도 있겠지만 그 것은 일단 논외로 해 두자. 하지만 문제는, 일단은 등판조차도 쇠로 덮었다는 근거가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사실 더 중요한 것은, 굳이 사료를 더 뒤적거리지 않더라도 '합리적인 군사적 지식'들만을 통해서도 거북선이 철갑선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점을 쉽게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필자는 너무나 쉽게,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었으리라고 단언한다. 그에 대한 근거는,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의 등에 철갑을 덮으려고 애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으리라는 것이다. 거북선의 등에는 애초에 철갑을 두를 필요가 없었다. 쇠 송곳 정도면 아주 충분한 방호력을 가지게 되며, 철갑은 과잉투자에 불과하다.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 번째는, 철갑의 관리문제이다. 쇠송곳 정도야 크게 상관없지만, 철갑을 두를 경우 부식문제를 감당하기 힘들게 된다. 부식된 철갑은 무게가 가중되며, 이는 배의 유지에 심각한 문제를 겪게 된다. 거북선의 경우 쇠송곳을 꽂고 그 위에 젖은 거적을 둘렀다고 하는데, 젖은 거적이 철판 위에 올려져 있을 경우 철판의 부식속도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정도가 되어, 심각한 문제를 가져오게 된다.
두 번째는, 일본의 무기이다. 모두가 아시겠지만, 일본군의 주력무기는 조총이었다. 그리고 이 조총은, 현재 한국군 주력소총인 K-2와 비교했을 때 그 화력에서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이다. 쉽게 말하면, 조총을 막는 데는 철갑이 전혀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조총은 두께 1cm정도의 나무합판도 쉽게 관통시키지 못한다. 그리고, 조총은 곡사화기가 아닌 직사화기이므로, 애초에 등판을 공격하는 데는 의미가 없는 것이다. 조총으로 등판을 아무리 까봐야 배에 기스를 내는 수준밖에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일본도 곡사화기인 함포를 썼던 것이 사실이기는 하지만, 일본군에서 함포는 지휘선급에만 설치되어 상당히 그 비중이 낮았고, 사실 철판을 깔아봤자 함포공격을 당한다면 배의 파손은 피할수 없게 된다(그 충격이 철판을 넘어 아래로 고스란히 전달되기 때문에). 함포의 충격을 막을 정도의 철갑을 덮는다면, 배가 그 철갑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게 되어버리고 만다.
세 번째는, 일본의 전술이다. 일본군의 해상 전술은 기본적으로 '백병전'의 양상이다. 조총으로 적의 화력에 대항해가면서 접근한 다음 상대방의 배로 넘어가 칼질로 서걱서걱하는 것인데, 이는 위에 말한 두 번째와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백병전의 양상을 띄기 위해서는 배가 빠르고 신속하게 적에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상대적으로 배가 가볍고 약할 수밖에 없으므로, 함포의 무게와 반동을 배가 감당하기 힘드므로 함포를 자연스레 기피하게 되는 것이다. 말이 조금 샜는데 다시 돌아오자면, 일본군의 이러한 전략상 등에 쇠 송곳을 꽂는 것은 분명 도움이 되나(적이 아군의 함선으로 넘어오는 것을 저지하는 용도), 철판을 얹는 것은 쓰잘데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일본군의 전술이 저러하기에 함선간의 충돌이 잦고, 그러므로 배의 전반적 내구성을 키울 필요가 있었겠지만 그렇다면 차라리 측면에 철판을 깔았어야 한다. 등판에 얹은 철판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기실 함선에 철을 두르는 행위는 사실 함포방어용이라기보다는 화공에 대한 대처법인데, 젖은 거죽을 둘렀다는 것만으로 이미 화공 대비로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거북선이라는 배의 특징이다. 위의 당포파왜병장을 읽어보면 거북선의 용도를 추측할 수 있는데, 다름아닌 '돌격선'이라는 점이다. 적진 깊숙히 침투하여 적의 대오를 흐트러뜨리고 적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것이 돌격선의 목적이다. 그리고 이 돌격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이다. 강인한 몸체, 빠른 속도. 적이 정비할 틈을 갖기 적에 적진에 침투해야만이 돌격선으로써의 가치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 연안의 빠른 물살 등을 감안한다면, 또 한가지 조건이 추가된다. 그것은 바로 빠른 속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성이다. 아주 쉽게 생각해보자. 등판의 무게를 높이면, 당연히 배의 안정성은 감소하게 되어 있다. 그리고, 전체적 무게가 상승함에 따라서 배의 속도가 느려진다. 이는, 돌격선에게는 상당히 치명적인 약점이 되어 다가올 수 있다. 마치, 적의 후방으로 침투하는 목적을 가진 특수부대에게 개인화기로 M60을 지급하고, 거동이 불편해지는 중세 기사들의 갑옷을 입힌 꼴이라고나 할까? 이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위의 네 가지를 바탕으로 필자는 단언한다. 거북선은 철갑선이 아니었을 것이다. 이는, 이순신을 '세계 최초의 철갑선 발명가'의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일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그런 무의미한 행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순신의 위대함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순신이 거북선의 등에 철갑을 덮으려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오히려 이순신의 판단능력에 대한 고민거리를 던져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기실 임진왜란 후반기에, 거북선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일본군이 거북선을 마치 괴물취급하며 두려워했음에도 불구하고 거북선이 등장하지 않은 것은, 가면 갈수록 힘들어지는 재료조달의 열악함도 한 몫 했겠지만, 거기에 이순신의 실리적 판단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일본군 함대는, 굳이 거북선을 쓰지 않고도 격파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에, 거북선을 만드는 자체가 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위에도 언급했지만, 명량해전 때 거북선은 단 한 척도 없었다.). 거북선의 등에 철갑을 얹을 생각을 하느니 그것으로 함포를 하나 더 만들고, 포탄을 하나 더 만드는 것이 오히려 조선 해군에게는 훨씬 이익이었을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고 있었던 사실들이, '마냥 그러려니' 하는 인식하에 상식으로 굳어져버린 것들이, 때로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오해를 사고 있는 것인가. 한 번 다시 생각해보아야 할 이야기들이 너무나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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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와, 그냥 싫어하는 감정의 차이부터 말하자면. 그 싫어하는 감정을 공적으로...
저도 어느정도는 공감하는게
철갑이라는걸 두르면 부식이 장난이 아니죠
요새 세상에도 암만 철을 잘 제련하고 해도
부식되는것 땜에 음극화 보호라던가
이런걸 사용하는데 저시대에는 오죽했을까요?
또한 이순신에게는 거북선을 만든 과학자의 이미지 보다는
손자나 장량, 한신과 같은 그들과 견줘서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전략가의 이미지로써 남는게 더 합당하다고 보네요
굳이 보론을 달아야만 할 것 같아서 달자면,
장량은 병졸이나 부대를 통솔하기보다는 대전장을 꿰뚫는 대전략을 구상하는 사람이었기에
이순신이나 한신과 비교하기에는 무리가 많죠.
이순신은 전략가라고 보기보다는 장수로 봐야합니다.
한신이나 손무는 장수의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지만(한신은 완전히 그렇고 손무는 일부만)
장량은 아예 장수의 선에서 보기 힘든 사람이죠.
하긴 장량은 외교나 이런것까지
다 내다보고 한 사람이었으니
조금은 다르게 봐야겠지요